신애는 지금 잘려지는 머리를 신경이나 쓰는 걸가. 자신과의 은원으로 다시금 보게된 기억을 자르듯 관심없이 머리를 자른다. 그녀의 머리 자르기에
종찬도 또한 조용히 거울을 들어 비춰주고 있다.
신애는 아직 자신의 심장에 남아 있는 분신의
기억이 괴롭다. 그늘진 곳으로 사그라들기 전에 종찬의 거울은 그녀의 기억을 되 빚추고 있다. 결심이랄 것도 없이 모래속에서 발을 빼듯 나온
도시의 매퀘함. 오던날의 기억이 생각난다.
잘 굴러 가야할 자동차는 멈추고, 누군가
와서 고쳐 준다고 하면서 살갑게 말을 건내었다. 종찬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밀양에 아이와 함께 밀어 넣어 준다. 마치 밀양으로 가는 특혜인양
가게 되었다.
안그래도 생경한 이곳에
적절하게 투박하고 조금은 친근거리듯 들리는 밀양의 말투는 더욱더 그녀를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이 밀고 있다.
그녀는 옷 가게를 지나다
자신도 없이 내부를 변경하라고 애기하다가 수군거림을 듣고는 이 고장의 사투리 보다 더 이질감을 느낀다. 맞은 편의 약국의 여자는 도시의
풍요에서는 생각도 안해본 신을 믿으라며 치근덕거리듯이 그러나 상냥한거지 싶은 권유를 한다.
실제로 밀양은 영화를 보는 중에도 너무 힘들었고, 보고 나서도 받아 들이기 힘든 그
무언가로 참 고민을 했다. 펼쳐져진 모자이크 조각은 답답해도 인내를 가지면 마지막에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영화는 끝을 보고도 더
답답하다.
첫 글이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살인자의 딸을 우연히 접하고 도망 나오듯 집으로 와서
머리를 잘라버리고 귀찮은 종찬은 조용히 거울을 들고 있는,은 대상이 무엇이든 떨구어 버리고 싶었다. 너무나 존재감도 없고, 소리 없이 같은 편이
되주고, 주변을 서성거리는 그와 함께 영화는 시선을 걷어 드리 듯 맺어버린다. 생각을 갈무리 하기전에 더 괴롭게 만들어
버린다.
엘로라의 석굴에 새겨진
왕의 미담처럼, 품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매에게 살을 잘라 준, 성불의 조건처럼 인간이 살 수 있단 말인가 ?
누가 고통의 깊이를 저울에 올려 얼마라고 할 수 있을까. 도저히 표현하기 조차 지겨운
이 괴로움을 어떤 사람은 종교로 해결을, 친구라고 믿는 사람들은 관심으로 무언가 싸주려고 만 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여행 중이라면 현재의 위치는 말 투에서 느낀다. 쉽게 못 알아들을 때는
우리 모두 쉽지 않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듯이 신애도 경험한다. 어미의 본능인지 아니면 공포감인지, 신애는 자신과 다른 모습을 꺼내어 든다.
허영, 허세. 그 것들은 칼로 심장을 꺼내는 듯한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세월호 참사에 배가 물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부모들의 울음에 괴롭웠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연히 본 뉴스 동영상, 아나운서는 인터뷰 취소를 알리고 몇 분 전에 딸아이의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차분이 설명하던
그는 목소리가 갈라지며, 얼굴을 들지 못하는 순간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그래 우리는사람이지 우리가 스스로 얽어 매어 놓은 규칙과 규정에
인간성도 저버려서는 안된다.
영화 밀양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을 누가 공유 할 수 있나. 스스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괴로움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 구조로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되묻고 있다. 괴롭힘보다 처절히 우는 어미의 모습은 더 괴롭지
않나.
결국 조용히 그냥 옆에 있어 줄 뿐이고 괴로움을 던져 주면 받아 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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