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2015
헤이트풀
에잇
눈보라 속 역마차 한 칸. 8명의 낯선 이들이 모여든다. 이 설원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 퀀틴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작품.
퀀틴 타란티노 감독
서부 미스터리
187분 / 확장판 215분
"눈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믿을 수 없다.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다."
— 헤이트풀 에잇
작품 소개
노컷, 리마스터, 감독판, 확장판 — 원래 상영된 영화를 다르게 재편집해 내놓는 판본들은 특정 감독의 작품에서 자주 목격된다. 퀀틴 타란티노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리들리 스콧 역시 그런 감독 중 하나로, 그의 작품은 판본을 달리하며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헤이트풀 에잇은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장편이다. 제목 속 '8'은 여러 겹의 의미를 품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8명의 핵심 인물,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 그리고 그가 스스로 공언한 "인생에서 10편만 만들겠다"는 선언 속의 여덟 번째 자리.
줄거리
설원 속 역마차, 그리고 여덟 명의 낯선 이들
남북전쟁 직후의 와이오밍.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는 1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악명 높은 수배범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를 수갑으로 묶어 레드록 마을로 압송 중이다. 거센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역마차가 들른 중간 쉼터 '미니의 잡화점'. 그곳에는 이미 낯선 얼굴들이 모여 있다.
눈폭풍으로 갇힌 좁은 공간 안에서 8명의 인물들은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데이지를 빼내려는 내부자가 숨어 있다. 과연 여덟 명 중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타란티노 특유의 장시간 대화, 폭발적인 폭력, 그리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설원이라는 밀실 안에 가득 응축된 작품이다.
"사람을 믿으려면
그 사람의 동기를 이해해야 한다."
— 마르퀴스 워렌 소령
주요 등장인물
여덟 개의 얼굴, 여덟 개의 비밀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
커트 러셀
범인을 반드시 살려서 교수형에 처하는 원칙주의 현상금 사냥꾼. 거칠고 불한당 같지만 나름의 신념이 있다. 북부군 출신으로 남부군을 경멸한다.
현상금 사냥꾼
마르퀴스 워렌
새뮤얼 L. 잭슨
북군 출신 흑인 장교이자 뛰어난 총잡이. 백인 남부인들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고 있으며, 링컨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주장한다.
죄수
데이지 도머그
제니퍼 제이슨 리
1만 달러 현상금의 악명 높은 수배범. 끌려가는 와중에도 조롱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 미스터리를 품은 인물.
신임 보안관
크리스 매닉스
월튼 고긴스
레드록으로 발령 난 전직 남부군 대위 출신 보안관. 인종차별적 성향이지만 영화 내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교수형 집행인
오스왈도 모브레이
팀 로스
영국 출신의 레드록 교수형 집행인. 유쾌하고 말재간이 좋다. 타란티노 감독이 팀 로스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캐릭터.
카우보이
조 게이지
마이클 매드슨
크리스마스를 어머니와 보내러 가던 카우보이. 험상궂은 외모로 내내 의심을 받는다.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더 불안하다.
남부군 장군
샌디 스미더스
브루스 던
아들의 비석을 확인하러 온 퇴역 남부군 장군. 흑인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를 가진 인물로, 워렌과의 긴장감이 영화를 관통한다.
이방인
밥
데미안 비쉬어
가게 주인 미니를 대신해 잡화점을 맡고 있는 멕시코인. 크리스토프 발츠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 정체가 가장 불투명하다.
주요 시퀀스
다섯 개의 결정적 장면
눈보라 속 역마차 — 위험한 동승자들
거센 눈폭풍 속 들판을 달리는 역마차. 루스의 마차에 워렌이 올라타고, 이후 매닉스까지 합류한다. 좁은 마차 안에서 북부와 남부, 흑인과 백인 사이의 묵은 긴장이 대화 속에 서서히 쌓여간다.
미니의 잡화점 — 여덟 명이 갇히다
눈폭풍으로 길이 막히고 8명의 낯선 이들이 한 공간에 갇힌다. 타란티노 특유의 장시간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불안이 관객에게 서서히 전이된다.
링컨의 편지 — 진실과 거짓의 무기
워렌이 링컨 대통령과 주고받은 편지를 무기처럼 꺼내드는 장면. 그러나 나중에 편지가 조작된 것임이 밝혀진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는 이 영화의 세계관을 압축하는 장면.
챕터 4 — 진짜 시작은 여기서부터
정체를 감추고 있던 인물의 진상이 밝혀지고, 잡화점 안의 관계도가 완전히 뒤집힌다. 타란티노가 심어놓은 복선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쾌감.
혈투의 끝 — 누가 살아남는가
타란티노 특유의 폭발적이고 잔혹한 총격전이 좁은 잡화점 안을 피로 물들인다. 살아남은 자들의 마지막 결정은 정의, 복수, 법이라는 주제를 냉소적으로 마무리한다.
특별 감상 포인트
엔니오 모리코네의 마지막 서부
— 음악이 영화를 만들다
헤이트풀 에잇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다. 세르조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시리즈로 서부영화 음악의 전설이 된 모리코네가, 반세기가 지난 2015년 타란티노의 부름을 받아 다시 서부의 설원으로 돌아왔다.
모리코네가 이 영화를 위해 직접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고, 그 결과 생애 첫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의 나이 87세였다.
"눈이 내리는 장면에 그 음악이 흐를 때, 나는 영화가 아니라 겨울의 고독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관람 후기
모리코네는 2020년 세상을 떠났다. 헤이트풀 에잇은 그의 마지막 오리지널 영화 스코어로 남았다. 이 영화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거장의 작별인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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