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뜨거운 여름을 관통한 영화가 있다. 봄부터 가슴아팠던 세월호의 기억
명량 그리고 이순신.
여름위에 우뚝 선 서사적인 이 사람은 의무인냥 나에게 자신을 찾아보라 하였다. 국민학교수학여행, 끌리 듯이 가본 아산 현충사의 기억처럼. 조용히 그 숭고함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된 뉴스 방송.
[참고 미디어]
1) 서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김훈 칼의 노래
4) 방송: 불멸의 이순신 (KBS)
5) YouTube: 설민석의 명량 설명 / 기타 이순신의 사람들
역사는 지나간다. 역사를 직시하는 방식도 제각각.
이 방송 후에, 혹여나 실수라도 뉴스 데스크 안 보련다.
교학사 교과서만 올곧게 역사를 기술했다. 선전 하고 싶었나 보다.
자신들의 외면당함의 이유를 모르고 있군.
김훈의 칼의 노래, 여름 더위도 잊고 하루만에 읽어 버린 기억의 책.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 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한글이 이리도 아름답게 들린적이 없엇던 듯하다.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노량을 기다리리라.
한 해가 지난 여름. 많은 그의 후손은 다르게 애기를 한다. 300년 후에는 마침내는 나라를 잃어 버리고 작금에는 어린 아이들도 지켜주지 못하고 물 속에 쳐 밀어 버리고.
어른이여서 창피하고, 역사를 멋대로 사냥하는 이들과 공영방송사는 틈이 보이면 그것이 정당함을 내비친다.
샤를로 에브도는 이슬람 과격 테러리스트에게 총격 피해를 받았다. 이슬람 비하 보도는 납득이 안되는 수준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를로 에브도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데모를 과잉 진압하는 경찰을 비난했단다.
Je Suis CHARLE
나는 샤를리다.
광의의 표현의 자유, 무력행사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다.
표현은 자유이고, 자신들에게 반대 데모도 정당함을 말하는 언론. 그리고 잘못된 사회적인 통념과 진실에 다가가는 그들의 행동. 물론 이주 이슬람인과 지금 프랑스가 겪는 사회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주류 프랑스인의 하수인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흘리듯이 역사속에 자신들의 논리를 집어넣는 한국 언론 같지는 않다. 비겁하다. 영화가 잘되니 거기에 묻어 가는 비겁함은 비류하기만 하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노량으로 나가 호기롭게 일자진으로 맞선 이순신처럼 당당해라. 스스로 정당함이 없으니 저리 비굴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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